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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5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본문

성경

마태복음 16:15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샤인피플 2025. 3. 6. 10:18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문장에 지나지 않지만,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예수님의 정체성과 제자들의 믿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당시에 이 질문이 어떤 배경에서 던져졌고,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알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도전과 영감을 줍니다.

1. 역사적, 문화적 배경

로마 치하 유대 사회

예수님 당시 유대 땅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식민 지배 속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로마의 압제를 끝낼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 기대가 예수님 활동 시기에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권위 있게 가르치고, 기적을 베푸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혹시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선 여러 소문과 추측이 있었지요.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신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온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 엘리야나 예레미야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분명 특별한 분인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다들 헷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층의 반응

당시 유대교 지도층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는 주요 분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전 율법까지 지키며 경건을 추구했고, 사두개인들은 주로 성전과 제사장 조직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누리던 이들이었습니다. 두 그룹은 신학적인 입장과 정치적 태도가 달랐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만큼은 공통된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전통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사두개인들이 주도하던 성전 경제 체제를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가 흔들린다고 느낀 지도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예수님을 모함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 이방 문화의 접점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신 장소는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입니다. 갈릴리 북쪽 변방에 자리하고 있는데, 본래 바니아스(Paneas)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리스 신 판(Pan)을 숭배하던 신전이 있었고, 로마 황제를 위한 웅장한 신전도 세워져 있었으며, 동굴과 암벽 곳곳에 우상 신상들이 가득하던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선뜻 찾기 어려운, 이방 문화와 우상 숭배가 넘쳐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이 지역에 가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당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물으신 뒤, 곧바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대표격인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우상 숭배의 심장부 같은 장소 한가운데서,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해와 기대

제자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 등을 통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지만,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메시아 사명을 이루실지까지는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유대인 대부분은 ‘메시아가 오면 곧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정치적으로도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크게 당황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제자들의 고백이 완전한 이해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이야말로 오랜 예언이 가리키는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던 것이죠.

2. 현대적 적용 – 오늘 우리의 대답

예수님은 과연 누구인가?

예수님은 오래전 제자들에게만 이 질문을 던지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각 사람에게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뛰어난 성인, 훌륭한 교사 정도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바로 그 주장을 중심으로 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교단의 공식 입장을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개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핵심입니다.

개인의 고백과 공동체 신앙

예수님이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곧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 공동체가 세워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내 구주로 믿고 고백한다’는 사실은, 바로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주’로 고백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예배하며 세상의 박해를 이겨냈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혼자서는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돌보고 격려해야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 믿는가에 따른 삶의 변화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자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에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뒤따릅니다. 예수님을 참된 주님으로 믿는다면, 이제 내 인생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내 일상 속에서 정직, 성실, 사랑, 용서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애쓰게 되고, 세상의 유혹이나 불의에 대해서는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그분이 죄인들까지도 품어주고 용서하신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역시 이웃을 향해 너그럽고 긍휼히 대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세상 한가운데서의 고백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도 가이사랴 빌립보처럼 각양각색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원주의”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고 고백하는 일이 때론 차별적 혹은 편협해 보인다는 이유로 공격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상의 도시 중심부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그들이 누구를 믿고 섬기는지 분명하게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입으로 외칠 수는 없겠지만, 행동과 태도를 통해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삶은 어디서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친절과 희생을 베풀고, 일터에서 정직과 신뢰를 지키며, 그럼에도 “왜 그렇게 사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리해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한 것은 신앙의 대전환점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오해와 기대가 혼재하던 시대와 장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임을 고백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도 각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내게 누구이신가? 그 대답은 교회의 공식문서나 유명한 설교자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고백해야 하는, 인격적이고 결단이 필요한 물음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은 윤리 선생이나 종교의 창시자 정도일 뿐”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분은 단순한 성인을 훌쩍 넘어서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라면, 우리는 더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게 됩니다. 그 고백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 인격, 삶 전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고백을 발견하고, 그 고백 위에 세워지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힘과 위로를 얻길 소망합니다. 아무리 혼돈이 가득한 세상이라 해도, 예수님을 진정한 주로 모시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길과 진리, 그리고 풍성한 삶의 소망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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